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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11. 27. 18:50
작성자
AP.KENY

 

*함께 들어주시면 좋습니다.

 

 바람이 시원했다. 사람이 어떤 변화를 거치던 자연은 한결같다. 어릴 적 비상하곤 하던 이 벼랑 역시 그대로였다. 나는 벼랑에 걸터앉았다. 오늘을 기점으로 내 삶은 많이 달라질 테니까. 그래서 답지 않게 과거에 젖기로 했다.


 

 그날의 나는 날아오는 부엉이를 보았다. 거진 6년 만의 재회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알마였다. 윌로우의 편지 부엉이 알마가 틀림없었다. 이는 다시 말해 편지 한 통 남기고 사라져 버린 부모님의 흔적이었다. 지쳐가던 마음에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의 감정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성을 유지해 리디아 V. 윌로우. 스스로를 다독여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테다. 그렇게 위안 삼으며 창가에 앉은 알마를 품에 안았다. 6년 만에 만나는 부엉이는 훨씬 여려진 듯했지만 여전히 따스했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길래 이리 야위었나 걱정하길 잠시. 나는 알마가 가져온 편지에 손을 뻗었다. 두께 있는 편지는 익숙한 실링 왁스가 붙어있었다. 부모님이다. 두 분이 드디어 연락을 하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었다.

 

 그러지 말걸. 

 그 편지를 읽지 말걸.

 후회인지 체념인지 모를 중얼거림이 생긴 날이었다.

 

 편지는 어머니가 쓰진 종이 네 장, 아버지가 쓰신 종이 열두 장. 그리고 타자기로 쓴 듯한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편지를 전부 읽어내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편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사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런 편지가 내게 와야 했는지 납득할 수가 없어서.

 

 '우리에게 불사조 기사단 입단 제의가 왔었단다. 골이 깊은 갈등은 우리도 모르는 새 차근차근 다가오고 있었구나."

 평화롭던 에어민스가의 작은 주택을 떠올렸다. 보름마다 장을 보러 가고, 아버지께서 학회에 가시면 어머니와 결투 연습을 한다. 어머니께서 집을 비우시면 아버지와 즐거운 토론을 나눈다. 단란하고 화목하던 주택이었다. 

 

 '리디아. 우린 사랑스런 너에게 떳떳할 선택을 할 거야. 반발이 있겠지만 우리가 옳다 믿는 길을 걸을 거란다. 너와 결론을 내렸던 대로. 머글 태생도, 순수 혈통도 고통받지 않도록 노력하마.'

 

 5마일쯤 이동하면 에어민스 마을이 나온다. 사건 사고 없이 조용하며 새로 누군가 이사 오면 그날이 축젯날이 될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사건이라 해봤자 '옆 마을에서 강아지가 태어났다.'가 끝이다. 서로 빵을 나눠먹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고깝게 보는 자들이 많구나. 생각보다 반발도 심하고…. 날 선 반응이 돌아오기도 하여 두려운 날도 있단다. 편지조차 보내지 못하게 하다니. 우리 딸이 많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구나. 잘 지내니?'

 

 본디 불행은 무차별적으로 덮쳐오는 법이랬다. 내가 겪지 않아도 누군가는 겪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프지 않아도 누군가는 아프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고자 했다.

 

 '우리 딸. 잘 지내고 있니? 우리는 요즘 너를 두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구나. 이것이 너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어리석었을지 모르겠어.'

 

 노력은 자신 있었다. 성실함도 자신 있었다. 그래서 8년이 넘도록 꾸준히 움직일 수 있었다. 옳다고 믿는 길을 향해, 홀로 오롯하게 서서. 이를 악물고 앞으로, 앞으로. 휘청거려도 가족을 떠올리며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친구를 생각하며 한 걸음 내디뎠다.

 

 '이곳 상황은 좋지 못하구나. 엘리너와 나는 단단히 눈 밖에 나버렸어. 더는 버티기 힘들 예감이 들어 알마라도 보내보마. 가는 길에 머글에게 총을 맞진 않길 바라며. 마지막 편지가 되겠지만, 어떻게든 꼭 돌아가마. 너도 몸 조심 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나 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렴.'

 

 편지에 무너져내려 주위를 살폈다.

 노력으로 변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별 하나가 낙하한 날이었다.


 

 오늘은 달이 유난히 밝았다. 반짝이는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홀로 정보를 정리하고, 또 인연을 그려내며 과거에 파묻히길 벌써 반년이다. 슬슬 일어나야 할 때였다. 이렇게 있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최선이 무너졌다면 차선을. 차선을 놓쳤다면 차악을. 어떻게든 최악은 고르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그래서 나는 지팡이를 잡았다. 눈을 감았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 나에게서 굴레를 끊을 수 없다면 내 다음에서 끊어내면 되겠지. 가망 없는 희망을 소망한다.

 

 나는 오늘 벼랑에서 낙하했다.

 그 끝이 해저가 될지 은하수가 될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인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