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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9. 15. 04:04
작성자
AP.KENY

 왁왁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간혹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섞이지만 얼마 안 가 다시 웃음소리로 바뀐다. 이곳은 헬턴 보육원. 작은 소도시에 딸려있는 보육원이다. 시설은 열악하진 않지만 풍족하지도 않다. 단체로 낡은 이불을 덮고 거실에서 잠을 청한다. 아침 식사는 토스트와 계란. 가끔은 베이컨과 토마토도 곁들여진다. 또 다른 가끔은 토스트뿐이다. 아이들은 서로의 옷을 같이 입는다. 나이가 찬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원장님의 수업을 듣는다. 제법 평화롭다. 몇몇 해프닝이 없다면 이곳은 통상적인 낙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테다.
 
 "얘! 이리 와서 빨래 좀 도와주렴! 내일이면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올 거야!"
 "알겠어요, 원장님. 빨래 널고 애들 재우면 되는 거죠?"
 
 하루 뒤면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다. 벌써 10월이니까. 타 보육원에서 감당하지 못한 아이들이 오기도 하고, 여러 사정을 안고 보육원에 올 수밖에 없던 아이들이 오기도 한다. 또 시간이 흘러 겨울이 다가올수록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의 비율은 늘어갈 것이다. 장담해도 좋다. 내가 이곳에서 9년 정도를 살아오며 깨달은 사실이니까. 
 어른들은 보육원에 아이를 버리면 모두 잘 살거라 생각하나 보다. 멍청해. 보육원이라고 수용 인원이 무한대가 아닐뿐더러, 예산은 코딱지 만하다. 그럴 때 원장님은 가끔 찾아오시는 후원자들과 긴긴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끝나면 다정하고 살갑던 원장님이 히스테리를 부리곤 하셨다. 뭐라고 하셨더라. 그러니까... 맞아.
 
 '착한 아이처럼 굴라고 했잖니! 품행을 단정하게 하고 칠칠치 맞게 굴지 말라니까... 내가 나 좋자고 부탁했었니? 고매하신 분들은 우아하고 정숙한 아이만 편애한다는 걸 왜 아직도 몰라...!'
 
 원장님의 한 서린 외침에 나이가 찬 아이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을 방에 들여보낸다. 히스테리가 심한 날에는 날아오는 물건을 피해야 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원장님이 진심으로 우릴 겨냥하고 던지는 게 아니라 그저 분에 못 이겨 물건을 던질 뿐이니까. 운 나쁘게 얻어맞아도 심해봐야 멍이 들뿐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아이들의 머리를 빗어주시는 원장님임을 모두가 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래도 어쩔 수 없다. 고우나 미우나 우리의 생사 여부는 원장님이 잡고 계신다. 심하게 학대하는 것도 아니고 달에 두세 번 눈먼 휴지곽과 찢어지는 외침이 전부라면 견딜만하지 않은가? 나머지 날짜에는 다정하고 살가우신 분이라면 더더욱.
 어릴 땐 돌변하는 원장님이 마냥 무섭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이 보육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만 자그마치 30명이 넘는다. 나라에서 운영한다고 한들 예산은 앞서 말했듯 코딱지 만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후원받기 위해선 자선가들을 잡아야 한다. 영국에 운영되는 보육원만 꼽아봐도 두 자릿수를 훌쩍 넘긴다. 후원자들은 한 줌인데 그 후원을 받아야 할 보육원이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베렌-. 빨래 다 했어? 그럼 우리 책 좀 읽어주라아아."
 "아직이야 피터. 이제 세제를 넣었는 걸. 책은 있다가 자기 전에 읽어줄게. 그러고 보니… 너 숙제는 다 했냐? 학교 잘 다니고 있는 거 맞지?"
 "윽. 베렌은 항상 잔소리야! 어려운 걸 어떡해!"
 "피터어…. 이 바보 같은 망아지야…. 공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고 널 위한 거라고 내가 얼마나 더 이야기해야 노력할 거냐? 내가 뭘 위해서 니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을까. 우리 똑똑하신 패트리카 씨께서 모르진 않겠지?"
 "예, 예…. 우리 범생이 베로니스께서 모두 옳으시죠! 바보 같은 패트리카는 밀린 숙제나 하러 가렵니다!"
 "야! 씨…. 삐졌냐?! 빨래 끝나자마자 책 읽어줄 테니까 화 풀어 인마! 숙제하다 모르는 거 있음 케일에게 물어보고!"
 "알아서 할 거다 뭐!"
 
 아, 저 자식 성질머리는 누굴 닮아가지고…. 하여간 다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문제다. 아이들이야 그럴 수 있다. 그게 아이다운 일이니까. 하지만 뇌가 박혀있어야 할 어른들 마저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있다 뿐이랴 잦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 아이를 버리고 가는 어른들이 특히나 그렇다. 곧 동이 틀거라 한들, 물주머니를 안겨뒀다 한들! 겨울에 한 시간을 넘게 영유아를 밖에 내버려 두면 멀쩡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냥 죽어도 상관없단 마음으로 핏덩이를 던져두고 가는 걸까? 이해할 수 없다. 고열에 시달리고 손발이 꽝꽝 얼어버린 아이를 다린 아이들이 토닥여주고 어루만져준다. 내 첫 기억 역시 다른 아이들이 날 토닥여준 것에서 시작되었으니 말 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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